[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가슴에 붙은 태극마크에 감격한 순간, 팔꿈치가 찌릿했다. 그렇게 끝난줄 알았던 15파운드(약 6.8㎏) 우레탄볼과의 인연이었다.
1m80의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박근우(33·팀MK글로리아)는 체형에 걸맞는 힘의 소유자다.남자 프로볼러들의 평균 구속은 시속 약 25㎞. 분당 회전수(RPM)는 350회 정도다. 박근우는 다르다. 시속 29㎞를 넘나드는 빠른 구속에 RPM 최대 495회의 강렬한 파워볼링으로 독보적인 핀액션을 보여준다. 아직까진 보기드문 왼손 볼러라는 점도 독특하다.2022년 한국프로볼링협회(KPBA) 상금랭킹, 포인트랭킹 1위를 독식하며 MVP까지 거머쥐었다. 넘치는 힘을 바탕으로 볼링장 환경이나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안정감을 뽐낸 덕분이다.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역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1살 때 부모님을 따라 멋도 모르고 시작한 볼링에 푹 빠졌다. 독보적인 기본기에 타고난 힘이 더해지니 탄탄대로였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국가대표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하지만 벽에 부딪혔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둔 그에게 찾아온 팔꿈치 부상이었다.
볼링은 올림픽 종목이 아니다. 아시안게임의 무게감이 남다른 이유다. 의사는 최소 1년 휴식을 권했지만, 박근우는 3개월만에 다시 볼링공을 잡았다. 하지만 코앞까지 다가왔던 아시안게임의 꿈은 좌절됐고, 방황이 시작됐다. 박근우는 사랑했던 60피트(약 18.29m) 레인에 작별을 고하고 군입대를 택했다.
선수 시절 취미삼아 즐기던 다트에 빠져들었다.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승부사의 피는 다트 세계에서도 유효했다. 제대 후 4일만에 프로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그렇게 3년 넘게 이어진 다트 프로의 삶이 시작됐다."친구, 선후배들은 다 볼링 선수니까, 응원다닐 일이 자주 있었죠. '넌 이제 볼링 선수 아니다'라고 최면 걸듯이 여러번 다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아, 역시 난 볼링인이구나."2019년 볼링으로 돌아온 그는 전국체전 대신 프로 전향을 선택했다. 트라우마를 잊고, 완전히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특히 박근우가 주목한 것은 '선수 1인 체제'라는 프로볼링의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아마추어 때는 감독, 코치님들이 계시잖아요. 패턴 같은 걸 그분들이 보시고 저는 지시대로 정확히 굴리는데 집중했거든요. 하지만 프로볼링은 그런게 없어요.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이 매력 있었어요. 원래 팀에 부담이 될까봐 세리머니나 도발 같은 것도 잘 못하는데, 프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경기장 분위기도 많이 다르죠. 실업은 매년 전국체전을 바라보고 달리지만, 프로는 한달에 2~3번 열리는 매 대회가 모두 치열한 승부거든요."
박근우가 프로 무대 적응을 마치고 본격적인 실력을 뽐낼 즈음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1995년 창립한 프로볼링에겐 거대한 위기였다. 2021년 6개 대회를 열며 부활을 꿈꿨고, 박근우는 그중 상주곶감컵에서 프로 첫 우승을 거머쥐며 갈증을 풀었다. 신인상도 차지했다.이해 12월 결혼 이후 더욱 탄력을 받았다. 33개 대회가 치러진 2022년, 출전만 했다하면 본선 무대까진 파죽지세였다. 우승 2회(영월컵 양산컵), 준우승 3회를 기록했고, 연말시상식에서 MVP의 영광을 안았다.
박근우의 아내는 볼링계에는 남편 마냥 출중한 실력을 지닌 '볼링 동호인'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박근우는 "오해가 있어요"라며 웃었다.
"사실 다트하면서 만났어요. 볼링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인데, 제가 프로테스트를 준비하면서 연애를 시작했거든요. 데이트를 자꾸 볼링장에서 하다보니…손끝의 감각을 다루는 스포츠라는 면에서 비슷한지, 아내도 즐길수 있는 정도는 됩니다. 결혼식 3일 전에 첫 우승을 해서, 결혼식에 우승 트로피를 들고 들어갔었죠."올해로 33세. 프로 운동선수에겐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나이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박근우는 "개막이 임박했잖아요"라며 식단 조절과 웨이트에 여념이 없었다. 평소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오는 12일 경기도 화성 마인드볼링장에서 열리는 MK HC컵을 시작으로 2023시즌 프로볼링이 개막한다. 박근우는 "새 시즌도 기대해주세요"라며 활짝 웃었다.